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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 #engineering-leadership #post-mortem #decision-making #mental-models #reproducibility

좋았다면 경험이고, 나빴다면 추억이다

· Sangkyoon Nam

작은 amber 씨앗을 손에 받쳐든 캐릭터 — 좋았던 한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다

어느덧 이직한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작년 퇴사를 준비하면서는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한 챕터를 마무리하면서 그보다 정확한 위로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반대로 쓴다. 좋았다면 경험이고, 나빴다면 추억이다.

스타트업에서 여러 역할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동안 잘못된 의사결정도, 운 좋게 맞아떨어진 순간도 있었다. 어느 쪽이 더 머리에 남느냐면, 아픈 기억일수록 더 오래 곱씹어 보게 된다. 회고록을 쓴다면 자연스럽게 실패한 장면 10가지가 먼저 나올 것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정작 다음 챕터에서 내게 도움이 된 건 반대쪽이었다.

과거에 광고 플랫폼으로 제품을 피벗하느라 TF를 맡게 된 적이 있다. 매일 새벽까지 코드를 작성했고, 그렇게 만든 플랫폼이 이후 회사의 메인 성장 동력이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걸 “힘들었지만 좋은 시절”로 기억했다. 운이 좋았고, 타이밍이 맞았고, 무엇보다 좋은 동료와 함께 정말 노력했으니까. 하지만 운도 타이밍도 사람도 다시 가져올 수 없고, 노력은 다시 쏟더라도 같은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다. 추억으로 두면 딱 거기서 끝이다.

한참이 지나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 시절의 한 장면이 새 프로젝트의 성공과 맞닿는 순간을 만났다. 어느 날의 결정, 어느 줄의 코드, 어느 고객의 한마디 — 그 하나를 떼어내 다시 묻는다. 왜 그 순서였는지, 그때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지. “좋은 시절”이라고 한 단어로 묶어둔 자리에서 구조가 드러날 때, 추억은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경험으로 각색된다.

반대로 그 시절의 실패도 같은 방식으로 떼어낼 수 있었다. 어느 날의 잘못된 결정, 어느 회의에서 놓친 신호, 어느 고객이 떠난 이유 — 그 하나를 다시 묻는다.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 그때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무엇이 그것을 막지 못했는지. 그러나 아무리 정직하게 들여다봐도, 거기서는 “다음에 이건 하지 말자”의 목록만 나온다. 같은 함정을 다시 안 밟게 해주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거기서 나오지 않는다. 좋은 기억의 해부가 덧셈이라면, 나쁜 기억의 해부는 뺄셈이다.

이건 개발자가 테스트 코드를 작성하는 것과 비슷하다. 경력이 쌓일수록 예외 처리와 방어 코드를 열심히 만든다. 그런데 프로덕션에서 진짜 통과해야 하는 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시나리오, happy path다. 사용자가 매일 지나가는 길이자, 비즈니스가 굴러가는 단 하나의 흐름이다. 이 경로가 살아 있어야 제품의 진짜 가치가 만들어진다. 나빴던 일의 해부는 리팩토링에 가깝다.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제품이 전진하지 않는다. 좋았던 일의 해부는 happy path 테스트와 같다. 이 경로를 의도적으로 재현할 수 있어야 다음 챕터에서도 같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좋았던 장면을 자꾸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happy path는 잘 굴러가니 손댈 필요가 없고, 진짜 시급한 문제는 bad path 쪽이라고 쉽게 믿어버린다. 그래서 내가 본 대부분의 커리어에는 예외 처리와 방어 코드만 잔뜩 쌓인 채, 진짜 통과해야 하는 경로는 구멍이 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박소령 대표의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읽었다. 퍼블리 10년의 잘못된 의사결정 10가지를 정면으로 해부한 책이다. 아픈 장면을 그렇게 꺼내 들여다보는 용기는 드물고 귀하다. 이런 책이 있어야 같은 함정에 다시 빠지는 사람이 줄어든다. 다만 우리가 더 자주 해야 할 일은 그 반대편에 있다 — 좋았던 10가지 장면을 똑같은 깊이로 해부하는 일.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다시 쓴다. 좋았던 건 들여다보고, 나빴던 건 흘려보내자. 실패는 통과하는 것이고, 성공은 재현하는 것이다.

#참고 자료

  • 『실패를 통과하는 일』 — 박소령. 퍼블리 10년의 잘못된 의사결정 10가지를 정면으로 해부한 책이다. 실패를 그토록 정직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본 사례는 드물다. 이 글은 그 책의 정확한 반대편을 쓰려는 시도다 — 좋았던 10장면을 똑같은 깊이로 해부하자는.
  •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 Annie Duke. 결과로 의사결정의 질을 판단하는 인지 편향을 “리설팅”이라 부르며 정면으로 다룬다. 좋은 결과는 그냥 흘려보내고 나쁜 결과만 해부하게 되는 비대칭 — 이 글이 말하는 바와 정확히 같다. Duke는 포커 테이블의 확률론적 사고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 — Andy Grove. 인텔의 전 CEO가 쓴 매니지먼트 고전이다. 핵심 개념은 “관리 레버리지” — 작은 입력이 큰 출력으로 증폭되는 활동에 시간을 투자하라는 것. 좋았던 한 번의 성공 패턴을 해부해 다음에서 재현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레버리지가 큰 회고다.
  • 『The Score Takes Care of Itself』 — Bill Walsh. NFL의 샌프란시스코 49ers를 명문 팀으로 만든 Walsh의 핵심 도구는 “Standard of Performance”였다. 탁월함이 어떤 모습인지를 매뉴얼로 새겨두는 것이 그의 방법이었다. happy path를 조직의 자산으로 만든 가장 구체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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