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왓킨스의 The First 90 Days. 원제가 말해주듯 핵심은 단순하다 — 새로운 역할을 맡은 뒤 처음 90일이 그 이후를 결정한다.
#1년 전 — 이직이 확정됐을 때
책을 사두고 제대로 읽어본 건 1년 전, 이직이 확정된 이후다. 퇴사 여행으로 떠난 뉴욕행 비행기에서 순식간에 읽었다. 새 회사에 들어가면 “내가 뽑힌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지지만, 책은 처음 30일은 학습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이전 회사에서의 성공이 내 노력과 능력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받쳐준 것들이 훨씬 크다. 오랜 시간 쌓아온 동료와의 신뢰, 조직의 맥락에 대한 이해, 암묵적으로 공유된 배경 지식 — 그것들이 뒤에서 받쳐줬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새 회사에서는 그 모든 게 제로다. 나 자신은 같은 사람이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다르다. 처음 30일을 학습에 쓰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부분이다.
새 회사에 합류하면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 보여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 팀 간 역학, 숨겨진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다. 기술은 문서를 읽으면 따라갈 수 있지만, 맥락은 사람을 만나야 보인다. 나는 처음 한 달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1:1을 잡았고, 코드보다 사람과 프로세스를 먼저 이해하는 데 시간을 썼다.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그게 오히려 이후의 속도를 만들었다.
이직 직후에는 빠르게 인정받고 싶다는 유혹도 있다. 하지만 조직을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큰 변화를 시도하면 저항만 생긴다. 책에서 말하는 “얼리 윈(Early Win)“은 그래서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는 얘기다. 내 경우에는 기존 구성원들이 암묵지로 능숙하게 처리하던 CS 업무를 따라가며 문서화했다. 거창한 건 아니었지만, 학습에도 도움이 됐고 문서화 자체가 가시적인 성과가 됐다.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면서 스스로 적응하고 있다는 감각이 생기고, 주변으로부터 신뢰가 쌓인다. 그게 나중에 더 큰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지지대가 된다.
#최근 — 리더가 된 동료에게 추천하며
최근 리더를 맡게 된 동료에게 추천해주기 위해 책을 다시 한번 펼쳤다. 1년 전과 다른 부분들이 눈길을 끌었다.
처음 리더십을 맡으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내가 잘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개발을 잘해서 리더가 됐으니, 코드 리뷰를 더 꼼꼼히 하고, 아키텍처 결정에 더 깊이 개입한다. 이직할 때 빠르게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닮아 있다. 여기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
승진한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전 역할에서 성공하게 만들어준 행동을 멈추는 것이다.
리더의 일은 자신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팀이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 전환이 안 되면 마이크로매니저가 되기 쉽다. 열심히 하고 있지만 팀은 오히려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과거 내가 처음 리더가 됐을 때 받은 피드백도 동일했다 — 네가 잘하는 건 이제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잘되게 하는 게 중요하다.
STARS 모델도 이번에 다시 눈에 들어왔다. 내가 맡은 조직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진단하라는 프레임워크다.
| 상태 | 설명 | 리더의 역할 |
|---|---|---|
| 시작 (Start-up) | 처음부터 만드는 단계 | 빠른 실행, 팀 구성 |
| 회생 (Turnaround) | 위기를 돌려야 하는 단계 | 문제 진단, 방향 전환 |
| 급속 성장 (Accelerated growth) | 성장을 가속해야 하는 단계 | 구조화, 프로세스 정립 |
| 재조정 (Realignment) | 방향을 재정렬해야 하는 단계 | 위기 인식 공유, 변화 주도 |
| 성공 지속 (Sustaining success) | 성공을 유지하는 단계 | 혁신 유지, 안주 방지 |
같은 “리더”라도 스타트업 초기 팀을 이끄는 것과 안정된 팀을 유지하는 건 완전히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위기 상황의 팀에 안정기 전략을 쓰면 실패하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먼저 진단하고, 거기에 맞춰야 한다.
#역할이 바뀔 때마다 꺼내 읽는 책
이직할 때는 “먼저 듣고, 학습하라”에 밑줄을 그었고, 리더 관점에서는 “이전 역할의 성공 패턴을 버려라”에 밑줄을 그었다. 다음에 이 책을 다시 펼칠 때는, 또 다른 곳에 밑줄을 긋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