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OKR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금은 많은 조직이 이미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지만, 당시 현장에서 기록한 내용을 회고하면서 남긴다.
#OKR의 탄생과 유행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은 인텔의 앤디 그로브가 1970년대에 고안하고, 그의 책 High Output Management에서 체계화한 목표 관리 방법론이다. 핵심은 단순하다. “어디로 가고 싶은가(Objective)“와 “거기 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Key Results)”. 측정 가능한 결과로 목표를 구체화하는 이 방식은, 조직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였다.
본격적인 유행은 1999년에 시작됐다. 존 도어가 초창기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OKR을 소개했고, 구글은 이를 회사 전체로 확산시켰다. 이후 링크드인, 트위터, 우버, 스포티파이 등이 잇달아 도입하면서 실리콘밸리의 표준 관리 방법론으로 자리 잡았다.
유행에 기름을 부은 건 2012년 워크샵 발표였다. 구글 벤처스의 파트너 릭 클라우가 OKR을 스타트업에 소개하는 발표를 공개되면서 500만 뷰를 넘기며 수많은 기업의 OKR 교과서가 됐다. 클라우는 이 발표에서 OKR을 회사, 팀, 개인 세 레벨 모두에서 운영해야 한다고 설명했고, 많은 회사들이 이를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개인 OKR은 정말 유효했을까?
#스포티파이의 경험
스포티파이는 2013년에 개인 OKR을 버리기로 결정했고, 2016년 HR 블로그를 통해 그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OKRs work well on a corporate level… But our corporate level is very nimble. So our objectives change fast and adapting iterated OKRs on multiple levels all the way to the individual consumed time and energy that we just couldn’t afford.”
OKR은 회사 레벨에서는 잘 작동한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목표가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서 개인 레벨까지 OKR을 반복적으로 내리는 과정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다.
세 가지 이유였다. 첫째, 속도가 빠른 조직에서 개인 레벨까지 OKR을 계단식으로 내리는 과정 자체가 가치 없는 비용이었다. 둘째, OKR은 “어떻게(how)“에 집중하게 만드는데, 스포티파이가 집중해야 할 건 “왜(why)“였다. 셋째, 방향이 자주 바뀌는 환경에서 OKR을 만들 때 인풋 자체가 이미 구식이 되어 있었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Shit in, shit out).
#구글의 자기 정정
그로부터 1년 뒤인 2017년, OKR 영상을 만든 당사자 클라우도 트위터를 통해 조용히 입장을 바꿨다.
“Skip individual OKRs altogether. Especially for younger, smaller companies. They’re redundant. Focus on company and team-level OKRs.”
개인 OKR은 아예 건너뛰어라. 특히 작고 젊은 회사일수록. 중복될 뿐이다. 회사와 팀 레벨 OKR에 집중하라.
스포티파이가 현장에서 먼저 알아챘고, 구글 스스로도 결국 인정한 셈이다. 구글이 실제로 경험한 문제는 개인 OKR이 성과 평가 도구로 오용된다는 점이었다. OKR의 본질은 도전적인 목표지만, 개인 레벨로 내려오는 순간 구성원들은 달성 가능한 목표만 세우기 시작했다. 인사 평가와 연동될 수 있다는 불안이 문샷을 평범한 목표로 바꿔놓은 것이다.
클라우는 2022년 블로그에서도 이를 한번 더 강조했다.
“If you’re implementing OKRs for the first time, or the team is still learning how to work with OKRs, ignore individual OKRs… Give the team a chance to see OKRs work well at aligning the teams across the org… And even then, maybe make them optional.”
처음 OKR을 도입하거나 아직 익숙하지 않은 팀이라면 개인 OKR은 무시하라. 팀 레벨에서 OKR이 잘 작동하는 걸 먼저 경험하라. 그때도 굳이 필요하다면 선택 사항으로만 운영하라.
현장도, 당사자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도 같은 함정에 빠졌다
빅테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스타트업에서의 내 경험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리더십을 맡으면서 개인 OKR 도입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가 먼저 해결했어야 할 문제는 회사, 프로젝트, 팀의 방향성이었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로 개인 목표부터 세우기 시작했다. 방향이 흐릿하니 OKR은 자연스럽게 평가 도구로 전락했다. 조직의 성장을 이끄는 도구가 아니라, 이 사람이 이번 분기에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측정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클라우가 경고한 바로 그 함정에 우리도 빠졌다.
스타트업에서 분기는 생존의 단위다. 개인마다 OKR을 설계하고, 정렬하고, 채점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시장은 움직이고 경쟁자는 새로운 기능을 배포한다. 스포티파이가 말한 “shit in, shit out”은 우리에게도 그대로였다. 방향이 흐릿한 상태에서 세운 개인 OKR은 분기 중반이 되면 이미 현실과 어긋나 있었고, 그걸 붙잡고 있는 게 오히려 짐이 됐다.
결국 스타트업의 문제는 혼자 풀 수 없다. 좋은 기능 하나가 출시되려면 기획, 디자인, 개발이 맞물려야 한다. 개인 OKR은 이 협력 구조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개인 성과로 돌리게 만든다. 팀이 함께 폭발적 성장을 만들어야 할 순간에, 각자의 숫자를 챙기게 되는 것이다.
그제서야 우리 팀은 이 문제를 인식했다. 한정된 리소스를 개인 평가 프로세스에 쓰는 것보다, 회사의 성장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결국 개인 OKR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최소화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그리고 아낀 리소스를 제품과 팀에 집중하는 데 쏟았다. 팀 OKR로 방향을 맞추되, 실행은 각자가 문제를 정의하고 가설을 세워 능동적으로 움직이도록 했다. 빅테크가 수년간 운영해보고 버린 이유를 우리는 훨씬 짧은 시간 안에 경험했고, 그 방향을 바꾼 결과 국내 해당 분야에서 1위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개인 OKR을 버린다는 건 개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열광했던 OKR의 핵심에 집중하면 된다.
개인이 OKR을 “갖는” 게 아니라 팀 OKR의 이니셔티브에 오너로 책임을 지는 것, 이것이 OKR이 원래 의도한 방향이다. 개인의 기여는 팀의 KR 달성을 통해 드러나고, 개인 성장과 평가는 OKR이 아닌 원온원과 성과 리뷰로 별도 관리한다.
OKR은 조직의 시선을 하나로 모으는 도구이지, 개인의 성과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다. 단순하게, 그리고 빠르게 초점을 맞추고 확인하는 것, 그게 OKR의 본래 가치다. 용도를 혼동하여 허비하는 동안, 시장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참고 자료
- How Google sets goals: OKRs — Rick Klau, GV Library (2013) 워크샵은 2012년 가을 개최, 유튜브 영상과 블로그 공개는 2013년 5월
- Why individual OKRs don’t work for us — Spotify HR Blog (2016)
- Skip individual OKRs altogether — Rick Klau, Twitter (2017)
- Set goals with OKRs — Google re:Work
- What my OKRs video got wrong — Rick Klau (2022)